리뷰와 추천

마쓰야마 - 일본

핑크버드 2025. 2. 16.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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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야마 온천 위주로 3일 여행을 기획 했다.
큰 딸과 함께 하는 첫 여행.


설레이는 가슴으로~
미국 여행보다는 너무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 했나 보다.
로밍도 안하고 일본어 인사말도 공부 안하고,
큰 딸에게 계속 혼나고 있다.
“일본어로 답사를 해줘야지 ! 기분 좋지.”
“엄마, 목소리 작게”
“엄마 , 쓰웁! 엄마”
“엄마”
”엄마“

나즈막한 지형들이  일본이구나 싶다.
모르는건 아니었지만 전체가 해안가……
실제 보니 실감도 남다른… ㅎㅎㅎ

마쓰야마는

'마츠야마(松山)' 라는 지명은 1603년 마츠야마 성을 쌓아올린 지역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것인데, 왜 마츠야마라고 불리게 되었는지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성에 존재하는 산에 많은 소나무[3]가 심어졌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에도 시대 마츠다이라 가(松平家)의 '松' 글자를 따온 것에서 유래했다.

그러나 이 둘은 설일 뿐이고, 정확한 유래는 밝혀지지 않았다.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에 있는 쑹산구(松山區)와 이름이 같은데, 사실 타이베이의 '쑹산'이란 지명은 일본식 지명으로, 대만일치시기에 이곳을 일본어로 '마츠야마'라고 불렀던 것에서 기원한다.  

시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마츠야마의 역사를 자세히 알려면 마츠야마 성(松山城) 축성 당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602년, 이요 국 마사키 성(正木城)[4] 성주 10만 석의 다이묘로 있었던 가토 요시아키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세운 전공으로 인해 20만 석을 가증받게 되고 아다치 시게노부(足立重信)[5]를 건축 봉행으로 임명하여 평산성(平山城) 축성에 착수했다.

1603년, 가토 요시아키가 이 지역을 '마츠야마'라고 명명함에 따라 공식으로 '마츠야마'라는 지명이 탄생했다. 그러나 1627년 요시아키가 성이 완성되기 전에 아이즈 번(会津藩)으로 전봉[6]되고 가모 다다토모(蒲生忠知)가 24만 석의 마츠야마 번주가 되었다.

그런데 1634년 다다토모마저 참근교대(参勤交代)[7] 도중 죽어 가모 가(蒲生家)가 단절되었고, 그 때문에 당시 이세 구와나 번주였던 마쓰다이라 사다유키가[8] 마츠야마 성을 맡게 되었다. 사다유키는 15만석 규모의 신판 다이묘로 마츠야마에 들어오게 되며 친번 중에서도 꽤 규모가 있는 편에 속했다. 막부 중기 이후부터 다른 번들처럼 재정난에 시달리다가 막말에는 다른 번들과 함께 막부의 조슈 정벌에 끌려가기도 했다. 보신 전쟁에서는 도바 후시미 전투에서 막부 편으로 참전했다가 조정의 적으로 선포되었고, 이에 항복을 선택하여 1868년 신정부측 도사 번이 마츠야마 성을 수령・보호하게 되었다. 신센구미의 하라다 사노스케는 이 번의 하급 무사 가문 출신이었다고 한다.

이후 1871년 폐번치현에 의해 마츠야마 번에서 마츠야마현(松山県)이 되었고 1872년 2월 9일 이시즈치현(石鉄県)으로 개칭되었다가 1873년 2월 20일 가미야마현(神山県)과 통합하여 에히메현(愛媛県) 소속이 되었다.


시내 셔틀을 타고 도착!
도고 야마노테 호텔 도착!
올해 140주기 라는 행사가 있었다.
와!  140년 .
어쩐지. 잠을 잘 자더라구

고풍의 숨결.. 이  느껴 진다..  했더니
Chek out  하는 날 아침에 들었네.

그릇이 탐낫던 아침 식사.
외국인 보다는 현지인들이 더 많았다는….
좋은 느낌이었다.

그 유명한 도고 온천이 있었지만
우린 유카타를 올 전체로 입고 호텔 내 온천을 즐겼다.

이제 슬슬 관광 쇼핑~

역사 내부

시골스럽다.
아주 작은 마을이라고 들었짐만,  재밌다.

한적한 쉼을 하기에는 아주 좋은 곳이다.
일본 여행을 항시 뒷전으로 내치는 경향이었는데
가끔 열 받으면 오천하러 오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도고온천 #일본 #마쓰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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